어렸을 때 일이다. 시장에서 가게를 꾸리는 부부가 부부싸움을 벌였다. 싸움은 격해져 밥그릇을 집어 던지고 벌어온 돈을 찢었다. 어린 마음에 ‘저 부부는 이제 끝장이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희한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찢어진 지폐, 자기들 손으로 찢어 던져버렸던 바로 그 지폐 쪼가리들을 밥풀떼기로 붙이고 있는 게 아닌가. 방금까지 잡아먹을 둣이 싸우다가 금세 희희낙락한 모습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부부관계는 희한하다. 인생을 뒤흔드는 큰 사건에는 똘똘 뭉치다가도 아침상에 놓인 반찬 하나로 원수 대하듯 싸운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고 모를 것 같다가도 알고, 쉬울 것 같다가도 어렵고 어려울 것 같다가도 쉬운 거. 알송달쏭한 것이 부부관계다.
부부관계와 비교하면 작년 유행한 노래 ‘썸’의 가사, ‘요즘 따라 내꺼 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너’란 연인들의 수수께끼는 그저 귀엽다.
10년을 연애하다 결혼한 지 1년도 못 되어 헤어지는 커플이 있다. 연애와 결혼의 근본적이 차이 때문이다. 연애는 심플한 일대일 관계지만 결혼은 복잡한 다자 관계이다. 시부모, 처부모, 시고모, 처고모, 시이모, 처이모, 시누이, 시동생, 처제, 처남 등등 다 열거하기도 힘든 잡다한 ‘관련국’들이 발언권을 행사하면서 끊임업이 평화를 위협한다. 부부싸움도 당사자 문제보다 ‘관련국’ 문제들이 발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즘 되면 연애가 1차방정식이라면 결혼은 고차방정식이다. 평소 부부관계가 3차방정식이라면 명절엔 12차방정식이다. 친척들은 “동생네는 해외여행 자주 가던데 시부모님도 챙겨드려야지”, “우리 아들은 명문대를 갔는데 조카는 어떻게 됐나” 등등 비교하는 말로 부부란 이름의 독립국가를 위협한다. 그 말들은 마음에 맺혀 귀성길 차 안을 냉랭하게 만든다. 폭풍 전야이다. 실제로 작년 7월 이혼건수가 1만400건이다. 1월에서 10월의 월평균 중 가장 높다. 설날 명절 스트레스로 갈등이 생긴 부부가 3월, 4월 입학기간에 대화 없이 지내다 뒤이어 큰 싸움으로 커져 마지막으로 이혼 절차에 들어간다.
갈등이 심하면 파국으로 치닫는다.
한 가수의 고백에 파국을 피하는 실마리가 숨어 있다. 몇 해 전 칠순을 넘긴 왕년이 미녀 인기 가수가 TV에 나와 이혼에 대한 자기 고백을 했다.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젊은 시절의 이혼이 자기 잘못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자기는 최고의 인기 가수여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라 가정과 남편을 돌볼 생각을 못했고,, 그것이 결국 남편으로 하여금 바람을 피우게 만들었으니 자기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고백은 용기 있는 행동이다. 생대가 밉보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보통 사람은 자존심을 접기 어렵다. 그렇게 자기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고 그 가수를 존경하게 됐다.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내 탓이오’하는 용기와 용서의 중요성을 배웠다.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상대가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했을 때 당사자가 정직하게 사과를 받아주어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굳이l 거창한 사과는 아니더라도 사소하더라도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해보자. 그 시작이 유치하고 사소할지라도 표현하고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 싸움을 억지로 참는 것도 좋지 않다. 싸울 문제에서는 치열하게 싸우고, 따질 것은 당당히 따질 수 있어야 한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더라도 더 큰 질병을 막기 위한 따끔한 예방주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더 편하다.
반면 다른 대가를 치러서라도 싸움을 피해야 할 경우도 있다. 사상가 에라스무스는 “필요하다면 돈으로 평화를 사라(If necessary buy peace)"라고 말했다. 아무리 평화유지비가 비싸게 든다고 하더라도 전쟁에 소요되는 비용의 10% 이라라는 국제정치의 원리는 가정 정치에도 적용된다. 예를 들어 집안의 대소사나 양가 부보를 모시는 문제를 생각해보자. 많은 부부가 이 문제로 자주 다툰다. 어떤 집은 일이 있을 때마다 싸움부터 한다. 싸울 게 뭐 있는가. 남편의 집, 양가를 동등하게 대하면 해결된다. 또한 부부싸움 뒤 오랫동안 냉전을 이어가면서 소모번을 벌일 때도 있는데 주로 싸움 자체보다 서로의 자존심 문제가 걸려 있다. 이럴 때 먼저 자존심을 숙이고 작은 선물을 내미는 것도 현명한 화해의 기술이다.
TV 다큐 프로그램에서 어떤 권투선수 부부를 보았다. 아이들 문제로 다투다 아내가 남편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데, 자신들이 운영하는 권투 체육관이었다. 링에 올라 실전처럼 치고받고 입술이 터지도록 난타전을 벌이는데 말싸움보다 훨씬 치열했다. 한참을 그러다 결국 웃고 만다. 이처럼 부부마다 독특한 화해의 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부부는 촌수가 없다. 서로 살아온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 차이점은 당연하고 싸움은 자연스럽다. 나도 신혼 때 다툰 적이 여러 번 있다. 나중에 같은 일로 또 싸우고 싶지 않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고 했다. 대개의 경우 서로 한 발씩 물러나 타협하는 것이 무난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신문 칼럼에서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란 시를 인용했다. 남편을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라고 표현하면서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 사랑하는 남자’라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며 소중함을 표현하는 시였다. 어떤 사람이나 내면에 양과 늑대가 공존한다. 이 둘은 사사건건 싸우는데 때론 양이, 때론 늑대가 승리한다. 모든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의 내명에 사는 양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착한 남편, 착한 아내가 되고 궁극적으로 행복한 부부가 된다. 정성과 사랑, 칭찬만큼 좋은 양의 사료는 없다. 2015년, 청양의 해에 좋은 양 한 마리 키운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양보하고 칭찬하면 어떨까. 모든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