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울=변윤수 기자] 2005년 12월 시행된 퇴직연금제도가 올해로 20년이 되지만, '연금'이란 명칭이 무색하게 노후 소득 보장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퇴직연금이 퇴직 후 안정적 삶을 도와주는 연금 기능을 못 하는 주된 이유로 턱없이 낮은 수익률을 첫손으로 꼽는다.
수익률이 저조하다 보니 적립 금액이 많지 않아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가 적고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간다. 퇴직연금이 은퇴 뒤 노후 최소 생활비를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조차 좇아가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다. 최근 5년과 10년간의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에 그쳤다. 겨우 2%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정도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주식시장 강세 덕분에 전년(0.02%)보다 수익률(5.25%)이 회복한 덕분이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연금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7.63%로 7%가 넘는 것과 대비된다. 외국 주요 국가들의 퇴직연금 수익률도 보통 7%가 넘는다.
우리나라 퇴직연금을 굴리는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의 낮은 운용 수익률은 한국 퇴직연금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이는 같은 돈을 부었어도 은퇴 때 손에 쥐는 돈이 다른 퇴직연금 선진국과 비교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26일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 행정학과 교수가 계산한 결과를 보면 퇴직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이 2%일 때와 7%일 때, 즉 5%포인트의 수익률 격차는 은퇴 후 확보하는 퇴직연금 자산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월 급여 400만원인 사람이 30년간 퇴직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할 때, 수익률이 2%면 원리금은 1억6천만원에 머문다. 이에 반해 수익률이 7%면 원리금이 4억원이 넘는다. 2배가 훨씬 넘는 차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아서 야기되는 기회비용은 만만찮다.
가입자의 잠재 손실액을 따져보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이 300조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수익률이 2%면 수익은 6조원에 그치지만 수익률이 6%면 수익은 18조원으로 12조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것도 큰 액수지만, 매년 복리로 누적된다는 가정하면 그 차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를테면 2017년 초 150조원 정도였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해서 2021년까지 5년간 매년 2%의 수익률이 아니라 6%의 수익률을 달성했다면 2022년 적립금 규모는 60조원이 더 많아졌을 것으로 추산됐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비교적 적을 때도 수익률 차이에 따른 가입자의 잠재 손실액이 이렇게 큰데, 앞으로 적립금이 계속 쌓이는 상황에서 낮은 수익률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가입자의 누적 잠재 손실액은 엄청나게 급증할 것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실제로 퇴직연금 제도 시행 1년 후인 2006년 1조원에 못 미쳤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10년 뒤인 2016년 147조원으로 늘었다.
이후 2018년 190조원, 2020년 256조원, 2022년 336조원, 2023년 382조4천억원 등으로 급격히 증가했고, 올해 1분기 현재 385조7천억원으로, 400조원에 육박한다.
이런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연평균 약 9.4% 성장세를 보이면서 10년 뒤인 2033년이면 지금의 2.4 배인 940조원에 이르러 '1천조원 시대'를 눈앞에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 교수는 "다른 나라는 7% 이상 수익률을 낼 때 우리는 안전한 투자만 해서 2% 수익률을 올린 것이라면 너무 한심한 일이 아닌가"라며 "여러 말이 필요 없이 정부는 퇴직연금 목표 수익률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국민연금공단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