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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서울시, 길음시장 정비조합과 소송에서 지고도 웃은 까닭은

조합 측 실수로 사업추진계획 효력 상실…법 규정 탓 해법 못 찾아
'사법부 판단 받아보자' 소송 끝 조합 승소…시는 즉시 항소 포기
조합 측 "시가 사업 이어지도록 지원"…서울시의 '뜻깊은 패배' 평가

  • 등록 2025.03.09 09:24:41

 

[TV서울=이천용 기자] 추진계획 효력 상실로 좌초 위기에 놓였던 길음시장 시장정비사업이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됐다.

9일 서울시와 길음시장 정비사업조합 등에 따르면 시는 최근 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의 실효(失效)를 유예해달라며 조합 측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했다.

이로써 조합은 사업을 계속 추진될 수 있게 됐고, 비록 소송에서는 졌으나 시는 내심 사업이 중단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규정에 따라 마지못해 실효 고시를 냈던 서울시로서는 '뜻깊은 패배'가 된 셈이다.

 

문제가 된 길음시장 시장정비사업은 성북구 길음동 535-8번지에 지하 3층, 지상 28층 주상복합건물을 건립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대상지의 60여년이 지난 시장 건축물은 E등급으로 안전상 문제가 큰 데다 시장 환경이 슬럼화하면서 환경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2020년 9월 24일 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이 승인됐으며, 같은 해 12월 23일 동의율 96%로 조합설립 인가도 받았다.

조합은 설립 후 약 3년간 이사회 20회, 대의원회 20회, 정기총회 및 임시총회를 10회 열면서 주민 의견을 모으며 사업을 추진해왔다.

또 건축 심의까지 절차를 마치고 사업 시행 인가 신청을 앞둔 상황이었다.

 

문제는 추진계획이 승인된 지 3년이 지난 2023년 9월 25일 발생했다.

조합 측이 추진계획 효력 상실을 막기 위한 유예 신청을 깜빡한 것이다.

전통시장특별법에 따르면 시장정비사업 추진계획은 승인된 지 3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을 잃게 된다.

신속한 사업 추진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으로, 효력 상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유예를 신청하면 되는데 조합 측에서 이런 법적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기한을 놓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조합 측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효력이 상실되면 조합도 해산해야 하고, 정비사업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의 경제 상황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대개 대출을 끼고 있었으며, 승인 효력이 상실될 경우 대출이자 등 매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조합 측은 실효 유예 시기를 인지하지 못하고 넘긴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정상적으로 추진되던 사업을 취소하는 것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다며 성북구와 서울시에 진정을 냈다.

시도 이런 애타는 사연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시 도시정비과는 우선 실효 고시를 미루고, 중소벤처기업부에 유예 승인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시에서는 시장정비사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는 점, 사업시행자 및 시공자의 사업추진 의지가 높은 점, 효력 상실에 따른 매몰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해 긍정적 검토를 요청했다.

하지만 중기부로부터는 '효력 상실된 것이 명확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전통시장법에 따라 사업추진 계획 승인의 효력이 상실됐을 때는 그 내용을 관보나 공보에 고시해야 한다는 검토 결과를 받았다.

도시정비과는 서울시 자체적으로 문제를 풀어보고자 감사담당관(적극행정팀)에도 사전컨설팅을 의뢰했다.

하지만 관련 법 규정 탓에 적극행정 대상으로 보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구제방안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행정기관 입장에선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명확해 보였다.

결국 시는 지난해 5월 실효유예 신청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풀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소송밖에 없다는 점을 조합 측에 설명하고 정부에 법령 개정도 건의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조합은 6월 13일 성북구와 서울시를 상대로 사업추진계획 실효유예 승인 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시작됐으나 시에서는 추진계획의 실효가 타당하다는 논리를 적극적으로 펴진 않았다. 시는 재판 과정 내내 법적 한계를 거론하며 원론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달 14일 열린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예상을 깨고 조합 측의 손을 들어줬다.

조합 측이 시효 완료 전인 2023년 9월 22일 성북구에 변경승인신청을 낸 바 있는데, 변경승인을 신청한 것 자체가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명백하게 표시한 것으로 본 것이다.

비록 실효유예신청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으나, 형식적 하자가 있는 실효유예신청이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런 1심 판결이 나오자 조합 측은 환호했고, 시는 즉각 항소를 포기했다.

시 관계자는 "효력 상실 규정 적용으로 인한 공익적 피해가 전혀 없고, 노후한 시장을 정비하는 게 공공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생각해 항소를 포기했다"며 "재판에서 졌는데도 속으로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소극적이었던 서울시의 소송 대응이 결론적으로는 '적극행정'이 된 셈이다.

시는 지난 6일 유예승인 위원회를 열어 실효 고시를 취소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번 주 안으로 이런 내용을 시보에 고시할 예정이다.

조합 관계자는 "법률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조합이 무척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몰라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며 "서울시가 여러 차례 현장을 찾아와 점검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여러모로 도움을 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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